아내의 출산이 이제 정말 가까워졌다.
막달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제대혈 보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제대혈은 지금 한 번밖에 채취할 수 없고, 보관해 두면 백혈병이나 소아마비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있자니 점점 혹해졌다.
‘이걸 보관해 두면 언젠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그런데 비용을 보니, 평생 보관에 무려 400만 원.
지금 당장 이 돈을 쓰기엔 부담스럽다. 이게 정말 꼭 필요한 걸까?
하지만 지금 아니면 채취 자체가 안 된다고 하니 고민이 깊어진다.
‘혹시 나중에 혈액암 같은 병에 걸렸을 때 쓸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도 들고.
유튜브에서 검색해 봐도 ‘미래를 위해 보관하라’는 내용뿐이다.
그래서 그냥 ‘좋은 게 좋은 거겠지’ 하고 보관 계약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의심이 많은 편이라 열심히 찾아봤고, 결국 제대혈을 보관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를 아래에 정리해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래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지 않는다면, 제대혈 보관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된다.
- 가족 중 혈액암 이력이 있다
- 아이를 둘 이상 낳을 계획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가 제대혈 이식 사례가 거의 없다
- 제대혈은 주로 혈액암 치료에 사용되지만, 혈액암은 유전적 이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 자가 제대혈로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
- 실제로 자가 제대혈이 혈액암 치료에 사용된 사례는 1~2건에 불과하다.
- 2000년대 초부터 가족 제대혈 보관이 시작되어, 2022년 말 기준 약 43만 7천 건이 보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활용률이라면 실질적 사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 게다가 2018년 이후로 자가 제대혈 이식 사례는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 관련 출처
2. 대부분 임상시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 보건복지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자가 제대혈로 자주 언급되는 뇌성마비, 자폐증, 1형 당뇨병 등은 모두 임상시험 단계일 뿐,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 병원에서는 마치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설명하지만, 실상은 2010~2016년 사이에 시도된 임상시험이 대부분이며 그 이후 진전은 거의 없다.
→ 보건복지부 출처
3. 성인이 되면 자가 제대혈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
- 보관 상태가 아무리 좋아도, 탯줄에서 채취한 제대혈만으로는 성인을 치료하기엔 양 자체가 부족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 결국 평생 보관을 해도, 20년쯤 지나면 자가제대혈은 쓸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판단했다
가족 중 혈액암 병력이 없다면, 제대혈 보관 대신 제대혈 기증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돈도 들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기증이 활성화되면, 언젠가 우리 아이가 아프더라도 필요한 제대혈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자료들을 보면 보관보다는 기증을 더 권장하고 있다.
민간 제대혈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자가·가족·기증 제대혈 이식 사례가 나와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 내용을 보면, 제대혈 보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관을 하고 싶다면,
- 아기를 둘 이상 낳을 계획이 있는지
- 평생보관이 아닌, 20년 한정 보관
을 고려하길 추천한다.
아주 드물지만 가족 제대혈을 통한 혈액암 치료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관이든 기증이든 본인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병원이나 업체의 말만 무조건 믿기보다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정보까지 찾아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용어 정리
- 자가 제대혈: 아기의 제대혈을 훗날 본인이 직접 사용할 목적으로 보관하는 것
- 가족 제대혈: 아기의 제대혈을 형제자매 등 가족의 치료를 대비해 보관하는 것
- 기증 제대혈: 출산 후 채취한 제대혈을 공공 제대혈은행에 무상 기증하여 타인의 치료나 연구에 사용하는 것
- 제대혈 보관: 제대혈을 개인 비용으로 민간 제대혈은행에 장기 보관하는 행위 (자가·가족 제대혈 포함)
- 제대혈 기증: 제대혈을 공공기관에 무상으로 기부하여 필요한 환자나 연구에 활용되도록 하는 것
'ㄴ잡담 > 예비 아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신 9 ~ 12주차 기록[1차 기형아 검사, 독감주사, 산후조리원 예약] (2) | 2024.10.15 |
---|---|
임신 7~8주차 기록[젤리곰 확인, 태아보험 가입] (5) | 2024.09.24 |
임신 6주차 기록(심장소리를 듣다, 부산 기장군 임산부 지원 정리) (2) | 2024.08.27 |
임신 5주차 기록(필수 영양소, 운동, 성생활에 대한 공부) (0) | 2024.08.18 |
임신 4주차 기록(첫 임신 확인 ~ 보건소 방문) (1) | 2024.08.13 |